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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말기에 벌어진 임오군란을

알아볼까 합니다. 임오군란은 절대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이 얼마나 무능했는지,

그리고 왕부터 시작한 비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실 이때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에

워낙 많은 사건들이 있었기에

다소 뭍혀서 간단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걸 알리면서


하나하나 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임오군란을 배울때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의 차별때문에

일으킨 사건이라고 배웠는데,


과연 그랬을까요?!


임오군란은 간단하게,

차별때문에 생긴게 맞습니다.

그런데 왜 불만이 극도로 심했을까요?!


일단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신식군대 별기군을 알아야 합니다.


별기군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서

만든 군대인데, 양반들이

주 구성원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들어가는 지원은

구식군대와 차원이 틀렸습니다.


입는것 먹는것부터가 비교가 안되었는데,

이 별기군 훈련이 좀 이상합니다.


양반들이 주 구성원이다 보니


군인이긴 군인인데 좀 뭔가 다릅니다.

노비가 엎고 뛰고, 노비가 대신 훈련을 받고

요강을 들고 다니고 아주 개판 이었습니다.


뭐 빠지게 훈련하는건 구식군대 였죠.

그런데 제대로 뭐하나 주는게 없었습니다.

봉급을 제대로 줄리도 만무 했죠.


그래서 일어난것이 바로 임오군란 이란건데,

문제는 이 임오군란이 이씨왕조의 삽질이자

멸망을 알리는 시발탄 이었다는 겁니다.


여태까지 이런역사는 없었는데,

왕이 있는 궁궐에 백성과 군대가

진입하여 습격할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왕부터 해먹기 시작해서 밑에 말단까지

해먹는 군납비리 규모는 최고였고,


구식군대에게는 그저 열정페이만

부르짖고 있는 상황 이었죠.


사건은 무조건 터질수 밖에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은 해당 국가가

답이 없는 상태라는걸 알려주는건데

문제는 이걸 다른 국가에게 까발리기까지 하니

뭐.. 이정도면 답도 없는것이죠.


그렇기에 임오군란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절대로 쉽게 넘길건 아니죠.




자세히 들어가 볼텐데 먼저

상황을 살펴봅시다.


강화도조약을 맺고 난후 조선은

별기군을 편성을 하는데, 이때 일본인 교관아래


양성을 하기로 합니다.


이제 차별이 시작됩니다.

일단 조선은 군인은 각 군영에 소속되 있는데,

소속되지 못한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쨋든 이들은 모두 조선군이니

국가의 녹을 먹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부턴가 군영에 속하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 임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갈때쯤

조정에서는 선심 쓰는듯이 밀린 임금을

준다고 불러 들이고 쌀을 배급하는데,


잉?! 모래가 절반이네? ㅋㅋㅋ





여기서 깊은 빡침을 느낀 군인들은


쌀퍼주던 관료들을 두들겨 패버리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13개월동안 밀린 임금 중에

한달치를 준다는 건데 그것마저도

그걸 모래를 왕창 섞어서 준것 입니다.



그래서 이사건이 고종에게 들어가는데...


고종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13개월치를 못주다니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자 영의정이 이리 이야기 합니다.


"진짜 원인은 쌀에 모래를 섞은것 보다

신식과 구식의 차별대우인것 같습니다.

월급 1년이상 안받으면서 스스로

먹고 입고 하면서 해결하면서 군령을

어기지 않았으니, 신식보다 구식군대가

오히려 군기가 좋은것 같습니다."


그러자 고종이 이야기 합니다.


"그러게 말이다.."


???????


이게 끝 입니다.

이후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이미 관료를 두들겨 패면서

경고 아닌 경고를 보낸 구식군대인데,

그들의 분노가 느껴질만 합니다만,


고종은

그러게 말이다. 로 끝을 냅니다.


그러면서 이와중에 고종은 개인 비자금

처묵처묵 하고 있었고, 민비도 마찬가지고

뭐 하나 비리가 없는 관료들이 없었습니다.


민비는 금강산 봉우리에 국고를

처박기 바빴고 고종은 그러게 말이다.

이거 한마디면 설명이 되고,


하급 관료까지 해처먹기 시작하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습니다.


원래 국가의 말기는 혼란스럽고

답이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

실드 칠수 있는 국가가 몇없지만


조선 또한 개판 이었던 겁니다.


어쨋든 구식군대는 이런걸 다 알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와중에,

관료들을 두들겨 팬 군인들이 잡혀서

옥살이 중이었는데, 이들을 사형시킨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소리에 참고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폭팔하게 됩니다... 구식군인들은

이제 행동으로 옮깁니다.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하했는데,

민씨 일가는 이미 썩을대로 썩었다는걸

이미 조선팔도 다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흥선대원군을 찾아간겁니다.



그리고 음력 6월9일에 무기고를

박살내고 병장기들을 탈취해 무장을 갖췄으며,

갇혀있는 흥선대원군 지지자들과


구식군인들을 석방 시킵니다. 

민씨 일가와 개화파의 집을 습격하고 박살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별기군 신식군대의 조교들과

교관들을 살해하고, 별기군 일부도 죽였습니다.

이렇게 사건은 멈추나 싶었는데,


내친김에 궁궐까지 쳐들어 갑니다.


뒤에 흥선대원군이 지원해 주고 있겠다

승질은 날대로 났겠다, 거칠것이 없었죠.

또한 백성들까지 구식군대를 지지하니

힘은 막강했습니다.




주 목표는 민씨 일가를 박살내는것.


그리고 그대로 민비 지지세력이었던

영의정과 이조참을 죽여버리고

그대로 창덕궁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누구도 제지하는 병사나 백성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가 불어나고

기세가 커지게 되는데,


민비가 일제에 손해 죽고 난 후,

조선팔도는 웃었다라는 말과

민비는 일제손에 안죽었으면

백성들의 손에 죽었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민심 또한 모두 등돌린 것이었죠.


그리고 원흉이었던 민겸호를 살해하고,

비리의 끝판왕 노답중에 노답.

한반도 역사상 장희빈 을 넘어서는

민비를 찾아 죽이려 돌아댕기기 시작합니다.


민비는 궁녀로 변장해서 도망치다

구식군대와 마주치지만 홍계훈이

누이 동생이었던 홍상궁이라고

속이면서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런 어마무시한 사태를

당연히 노답중에 하나인 고종이

수습할 능력이 있을리가 만무했고,

대원군을 입궐을 시킵니다.


이때부터 대원군이 다시 

섭정을 시작하게 된것 입니다.


그리고 대원군의 방식대로

모든것을 전면 개편 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고종과 민비는...


이씨왕조의 멸망을 앞당기는

청나라 군대를 들여오게 됩니다.


그리고 청군은 대원군을 납치하고,

다시 고종과 민비가 궁궐로 돌아오게 된겁니다.


또한 일본은!


야! 니들 때메 우리 공사관이랑

조교 교관이 죽고 어쨋든 우리는 피해를

봤으니까 ! 이거 보상해 !


제물포 조약 정도면 되겠는데?

할꺼야 말꺼야? 윽박 지르고 있었고,


결국 제물포 조약까지 이어지면서

조선의 미치는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차별때문에

일어난 군란은 맞기는 한데,

이 차별의 수준이 도가 넘었고,


이로인해서 군란이 일어 났는데,

이 또한 통제할 힘 따윈 없었고,

오히려 백성들이 이들을 지지하면서

미친듯이 런 하다가


뜬금 없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조선 내에서 청나라 입지를 만들어주고


당연히 이걸 본 일본은 가만히 있을리 없으니

피해보상 해달라고 난리 부르스를 쳐서

제물포 조약을 맺게 되는,


즉 조선의 멸망의 시발점이자,

식민지의 시작이라고 볼수 있는 겁니다.


이렇기에 임오군란은

절대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임오군란이 불러온 다음 사건들은

조선의 멸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건 이었으며,


나아가 식민지가 되가는 불씨였던 겁니다.




애초에 월급만 따박따박 줬어도 될것을

지들 해처먹겠다고 이리빼고 저리빼고

왕과 왕비 부터 그런 짓거리 하고 있으니


당시 열강들 사이에서 살아남는게

기적이겠지만요.


여기까지 임오군란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